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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설

바뀌어가는 명곡의 기준 -중독성-


 요즘 쏟아져 나오는 노래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중독성'이다. 텔미열풍에서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 전부터 항상 음악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중독성'이다. 머리 속에서 그 단순하고 자극적인 멜로디가 떠나가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지나가다가 길에서 스쳐 듣기만 해도 반복되는 그 멜로디는 머릿속을 온종일 지배한다.

 예전과는 달리 '명곡'의 기준도 바뀌었다. 요즘 10대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이번 XX 신곡 정말 좋아~ 진짜 명곡으로 나온 것 같아."
 "뭐, 노래가 어떤데?"
 "완전 중독성 있어. 한 번 들으면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아."
 이제 명곡의 기준은 '중독성'이다. 중독성이 없으면 왠만해선 잘 만든 앨범이란 소리를 하지 않는다.


 노래가 '중독적'이 되기 위해서는 멜로디가 단순해야 하고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화성법이라든가 기타 등등 이전까지의 '아름다운'멜로디가 되기 위한 기준들은 깡끄리 무시해도 좋다. 일단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 멜로디에 사용되는 음은 4음 정도가 적당하다. 5음 까지도 어느 정도 괜찮다. 6음은 너무 많다. 3음이나 2음으로는 너무 적어서 멜로디를 만들기가 어렵다.
 
 이렇게 멜로디를 만들었을 때의 중독성은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된다. 전공이 아니라 잘 설명할 수 없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멜로디는 뇌 전체를 사로잡아서 지배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멜로디는 특정 가사와 합쳐진다거나, 특정 브랜드에 연관시키는 등 응용을 하면 여러가지로 '장사'하는 데에 있어서 탁월한 영향을 발휘한다.

 대표적으로 '인텔' CF가 나올 때 마다 들려주는 멜로디가 있다. 그 멜로디는 그 브랜드를 상징하는 소리로 의미부여가 되면서 저작권자는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간단한 거 만들고 부자라니, 약간 거저먹는 장사같긴 하다.

 어쨋거나 '청각'과  연관지어진 홍보수단은 매우 지능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이윤창출을 추구하는 회사들에 있어서는 아주 탁월한 칭찬할 만한 수단이다.


 그런 중독성 멜로디가 요즘에는 가요계에 널리 쓰이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지는 다들 알 것이므로 구차하게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이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런 멜로디를 사용 한다는 게 비판받을 만 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앞세운 노래들이 대세를 타게 된 이유는 결코 단순한 잠깐동안 유행하다가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경향'에 업혀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디지털 음원시장이 활성화 되고, 관련 이상한 법규들이 생기면서 1분 안에 주요 멜로디와 후렴구를 들려주어야 한다.(음반시장을 지키겠다고 만든 저작권 법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1분만에 노래를 평가하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모바일 음원시장인 핸드폰 컬러링이나 벨소리 등에도 노래가 많이 이용되는데, 이렇게 '잠깐'씩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위해서도 그렇다. 벨소리나 컬러링이라고 해 봐야 몇 초 듣지도 않는데, 그 시간동안 기껏 듣게 되는게 반주라거나, 전개부분을 듣게 된다는 건 좀 그렇다. 후렴구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 1시간 남짓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최대한 많은 노래들을 들려주어야 하는 음악프로그램에서 한 곡당 배정 시간이 3분 정도밖엔 되지 않는 다는 것도 이런 현상에 한 몫 끼고 있다. 5분짜리 노래를 후렴구 다 잘라먹고 3분으로 바꾼다면 노래의 질은 말할 것도 없이 떨어진다. 필자도 팬이었던 박정현 6집의 타이틀 곡 '눈물 빛 글씨'를 처음 음악방송에서 듣고 굉장히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박정현이라도 이번엔 좀 아니다. 타이틀이 이게 뭐냐? 감동이 전혀 없다. 발단전개 절정 하강 없이, 발단 절정 하강 구조로 이루어 지는 것 같다.'라는 평을 노래를 제대로 듣기 전까지 했었다. 다른 가수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양파의 '그대를 알고' 같은 경우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었는데, '차가운 내 두 손을 놓은 적 없었죠'라는 가사가 후렴구를 잘라내는 바람에 '차가운 내 두 손을 나보다 아껴주었던'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사로 변형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하고', '짧은' 멜로디가 시장을 지배하게 만든 '상황'이나 '경향', 특정 '사람'을 비판 할 수도 없다. 시대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흐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경향에 의해 파생되는 문제가 앞으로 좋은 음악들을 많이 만들어 나 가야할 음악계의 목을 조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과 이미 시작되고 있는 지금까지의 변화를 살펴 본다면 앞으로의 변화가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하다. 

 우선, 노래가 짧아 질 것이다. 5분짜리 노래를 3분으로 자른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처음부터 3분짜리로 만든다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컬러링이나 1분 미리듣기 같은 것을 위해서라도 곡이 짧아지는 건 필연적이다. 짧은 시간 내에 절정부를 들려 주어야한다면, 5분 이상씩 길어지는 노래에서 첫 1분만에 절정부가 튀어나온다면 뒤의 3분간 내내 가수는 소리를 질러야 한다, 절정도 잠깐이어야지 계속 소리질러대고 하면 성대결절 걸리기도 쉽고, 곡이 식상해진다.'

 또, 단순하고 의미없는 가사, 단순한 멜로디가 시장을 주름잡게 될 것이다. 일단 노래를 3분으로 줄였으니, 담을 수 있는 가사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짧은 가사를 써야 하는데, 가사가 짧으면서 이상하지 않으려면 단순하고 아무 의미없는 가사가 아니면 힘들다. 많은 의미를 담는다거나 하려면 웬만큼 함축적으로 곡을 쓰지 않는 이상 길어지기 쉬운데, 또 요즘 트렌드가 직설화법이다 보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아예 가사를 이해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서 그냥 의미없는 가사로 짧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 또 단순하고 반복되는 멜로디에 가사가 단순하지 않고 계속 변한다면 단순하고 중독성 있는, 외우기 쉬워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따라부르기 쉬워야 하는데, 후렴구의 가사가 계속 바뀐다면 가사를 외우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가사의 순서를 외우는 것은 가수에겐 거의 고문일 것이다. 단순한 멜로디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변화이다.

 또 항상 필자가 강조하곤 하는 '앨범'에 관해서도 문제가 된다. 앨범을 사지 않는 것 조차 '트렌드'라 말해야 할 지금, 노래가 이런 식으로 변화 한다면, 앨범을 사지 않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중독성 있고 짧은 노래 1~2곡으로 관객들을 주름잡아야 하는 이런 와중에 중독성 있는 노래들로만 12곡, 13곡씩 만들어서 넣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많이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시선을 분산시켜서 대중들의 모든 관심을 한 곡으로 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타이틀 곡과 후속곡 2곡 정도만 중독성 있는 노래로 넣는다면, 중독성 있는 노래가 명곡인 이 시점에서 그러한 행위는 '타이틀 곡과 후속곡만 정성들여서 만들고 나머지 열 몇곡은 대충대충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앨범 제작자들이 제대로 된 곡을 만들고 하지 않으니까 난 이런 쓰레기 앨범을 사지 않겠다. 쓰레기 앨범은 살 필요가 없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더욱 날뛰게 할 것이다. 정성들여서 만든 곡이 어느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텐데, 열심히 만들어 놓고 욕먹는 짓을 하고 싶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싱글앨범이나 디지털 앨범을 많이 만들게 된다.

 또 노래가 점점 더 만들기 쉬워지다 보면 이런 중독성 노래의 범람이 이루어 질 가능성이 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가요계의 노래는 다 비슷비슷해 질 것이다. 사람들은 금방 식상해 할 것이고, '가요계가 너무 식상하고 유행만 따르려고 한다. 음악성 없는 이딴 음악들은 들을 필요도 없다. 앨범은 당연히 안 사는거고, 돈 주고 다운받기도 아깝다. 음악성 없는 이런 대충만든 노래들은 무료다운로드 받아줘야한다.'라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 현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김동률이나 유희열 같은 고집 센 가수들이 컴백을 해서 예전과 같은 복잡한 노래들을 잠깐동안 유행시킬 수 있겠지만, 이는 '경향'에 반대되는 일이므로, 단순히 잠깐동안의 '유행'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음악 듣는 데 돈을 쓰지 않게 되니까 정규 앨범도 제작 안 하겠다. 노래 만드는 데 대단한 작곡가나 작사가가 필요하거나, 제작 시간, 제작비도 얼마 들어가는 것도 아니겠다. 그러니 꼭 돈 받고 팔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무료배포를 해서 곡을 널리 알린 다음 곡을 이용해서 광고를 한다거나, 몇 년 전처럼 연예오락프로그램에 게스트로 가수가 출연해서 여자 출연자들의 사랑고백을 듣기 위한 프로포즈 노래로 이용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고, 음악을 쉽게 접하게 되어 가치는 떨어지고, 머지않아 사람들이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상황은 꽤 심각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필연적으로 이루어 질 것들만 나열해 놨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라거나 '이럴 수 있다.'는 상황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다면 '반드시' 이렇게 되는 상황들만 적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일단 심각한 상황이긴 한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 모든 신세기의 '경향'과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째로 바꿀 수도 없다. 조만간 사람들은 '음악이 그렇게 되면 뭐 어때? 당신은 낡은 사고를 가진 사람이야!'라고 나를 비판 할 것이다. 음악의 다양성이 말살되고, 음악의 가치가 떨어지고, 아무도 음악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뭐, 내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대책도 안 선다. 이렇게 뭔가 문제점들만 나열해 놓고 대책을 말하지 않는 다는 건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모르겠다. 이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뭘까?

 대책은 없지만, 어느정도의 생활 지침 정도는 찾을 수 있다. 새삼스럽게 '앨범을 사라'라고 말한다거나, '음악성이 높은 앨범들만 구입하고, 떨어지는 앨범들은 다운로드조차 하지 말아라'라고 말하지 않겠다. 난 그렇게까지 꽉 막히 사람은 아니다.

  그냥,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무시하지만 말아달라.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음악이 우리와 굉장히 밀접해 졌다는 데 있다. 음악은 점점 우리의 생활과 가까워지고 있다. 단순한 모든 것에서까지 음악이 이용되고 있고, 우리와 항상 함께한다. 항상 음악과 함께하게 되는 상황은 긍정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음악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고 해서 절대 그것을 단순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산소와 물이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라 무시해 왔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 항상 곁에있던 것을 무시하는 단순한 사고가 인류의 '멸망'문제와 직결되어 왔듯이. 음악을 무시한다면 조만간 '음악'이 멸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한국의 대중음악이란 마구 짓밟아도 좋을 무가치한 '생활 소음'의 일부가 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해답은 하나다. 그냥, 항상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음악과 함께 한다는 것에대해 기뻐하고, 스스로를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라. 그것말고는 정답이 없다. 모든 문제가 잘 해결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