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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박정현 스페셜

박정현 스페셜 (5집 On & On)

이제 세 번째 박정현 스페셜인가요? ㅎㅎ 힘드네요... 지금 상황에서 글 올리 게 하나 더 있다는 게 기쁜 일인지 힘든 소식인지... 이미 종이에 써 놓고 옮겨 쓰는건데도 이토록 힘드네요.


album



 가로로 쫙- 늘어난 와이드 화면이다. 거대한 바위사막이 펼쳐져 있고 하늘이 보인다. 앵글의 중심에서 약간 틀어진 곳. 한 사람이 서 있다. 세상 어디라도 걸어갈 듯한 도전적인 여행자의 차림으로. 
 
 'On & On' 5집 앨범 타이틀이다. 뚜껑을 넘겨보면, 1집 PIECE에서의 Intro의 가사가 적혀있다. On & On just to find one littel piece of peace of mind 로 시작하는 곡이다. On & On은 여기에서 따 왔다. 박정현의 또 다른 5번째 조각. 끝없이 다른 조각을 보여주기 위해 모험하고, 또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의 컨셉이다. 그래서 시도도 상당히 다양하고, 생소하면서 자연스럽다. 생소하면서도 자연스럽기란 힘든 것이지만,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한 그녀의 조각 중의 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에 참여하는 비중도 높아졌고 음악적 시도가 놀랍도록 많아졌다.

 5집 앨범은 참 대단한 앨범이다. 4집앨범이 나온 뒤 3년만에 나온 앨범이데, 3년을 기다려서 이런 앨범을 얻을 수만 있다면 6년도 더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 할 정도다. 필자는 처음 5집 앨범을 듣고 나서 심한 자괴감과 실망감에 빠졌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훌륭한 앨범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자심감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물론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었지만. 앨범의 음악성에 우열을 매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좋은 앨범이었다. 

 다른 앨범이라고 곡 배열이 잘 안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앨범은 한 곡 한 곡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가장 좋은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만들어 진 노래들 같다. 7번과 8번 트랙의 순서를 바꾼다거나, 한 곡을 빼고 그 자리에 다른 곡을 가져와 끼워 넣는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의 상태보다 좋아질 것 같지 않고 어색해 질 것 같다.  

 이번 앨범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현악기들과 섹소폰 등과 같은 세션이다. 이미 4집 부터 스케일이 커졌고, 다양하고 풍부한 음악을 탐구 해 나가는 경향을 보여줬지만, 이제 5집은 '풍부함'이란 단어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드럼같은 타악기 보다는 피아노나, 현악기, 관악기 등의 클래식적인 악기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고, 적재적소에, 난잡한 듯 흩어지면서 결국 하나가 되어버리는 놀라운 화음을 보여준다. 보컬에 있어서도, 그녀와 앨범 컨셈에 가장 알맞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찾기위해 두 발에 땀나도록 뛰었다녔다고 한다. 그 결과 그녀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완급조절, 여러가지 목소리를 넘나드는 매력을 제대로 발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앨범의 형식도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어서, 장르도 뭐라고 규정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완전한 프리스타일의 앨범이다. 어느 쪽에 가깝다 라고 말하기도 힘든 게, 어디에 가까운지조차 잘 모르겠다. 이상한 장르이다.

 긴 말 말고 어서 들어보도록 하자.


track

 01track. Ode     작사 작곡: 박정현, 편곡: 김조한 박정현
 뭔가 근사하 세계가곧 눈 앞에 펼쳐 질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고, 코러스가 많아서 웅장한 느낌도 준다. 알 수 없는 소리로 뭔가를 말 하는데, 흐릿한 목소리로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앨범 가사집에는 분명히 뭐라고 가사가 적혀있는데 실제로 노래중에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그냥 소리만 낸다.) 아마 담겨있는 숨은 의미일 것이다. 열심히 자라서 아무도 날 쳐다볼 수도 없는 곳까지 자라겠다는 의미이다.

 02track. 아름다운 너를     작사: 김윤아, 작곡 편곡: 황성제
  제목에 '아름다운' 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그런지 굉장히 아름다운 노래다. 건반악기와 현악기의 화음이 아름다워서 듣기 좋은데, 특히 현악기 세션에 100점을 주고싶다. 이번 앨범에는 현악기의 사용이 유난히 두드러 지는데, 거기에 집중해서 들어도 좋다. 풍부하고 화려한 느낌이 환상적이다. 긍정적이고 밝게 부른다. 정말, 최고의 곡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판이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03track. Long Goodbye     작사 작곡 편곡: 정석원
 이 정석원이란 사람은 작사 작곡 편곡까지 혼자 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곡도 무난하게 나온다. 역시 세션이 좋다. 마지막 부분의 섹소폰 소리와 추임세에 몸이 움찔 움찔 한다. ㅎ

 04track. 달     작사: 강지훈, 작곡: Hiro Swano, Kazz Izumi, 편곡: 황성제
외국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일본사람들인데, 중국에 이런 멜로디의 곡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보아 다국적 작곡가들인가보다...-_-;; 아니면 중국계 일본인이든가. 대부분의 평균적인 사람들이 '미아'와 함께 이 곡을 5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으로 뽑는다. 이번 5집 타이틀이기도 했고, 악기도 중국 악기 이호를 사용해서 동양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낸다. 몽환적인 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또 동양적인 분위기를 팝적으로 승화시켜서 그 매력을 극단까지 뽑아올린다. 시작과 발단부를 길게 끌고 가다가 절정부에서 반음 올려서 확 내질러주면서 화려하게 불사지르고, 마지막에 사르르, 급속도로 사그러 들면서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 수법은 고전적이면서도, 사람들을 한동안 박수치는 것도 잊게 만든다. 가창력을 마음껏 뽐내는 5집의 몇 안되는 곡 중 하나다.(사실 소리지르는 곡보다 미묘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되는 그런 부분들은 보통 가창력으론 어림도 없다.)

 05track. Miracle     작사: 권윤정, 작곡: 김덕윤, 편곡: 황성제
 가성과 진성을 매끄럽게 넘나드는 매력. 박정현의 특기이기도 한 이것이 잘 살아난 곡이다. 미묘하고 신경쓰기 힘든 부분까지 섬세하게 터치를 했다. 간주에서의 코러스와 기타반주가 이상하게 귀에 잘 들려온다. 두리뭉실하지만 통통 튀는 애드벌룬같이 밝고 괜찮은 곡이다.

 06track. 알아볼께요     작사: 박정현 강지훈, 작곡: 황찬희, 편곡: David Thomas 황성제
 누가 박정현이 작사 안했다고 할까 봐 시작부터 영어 가사다. I don't need no superman. Don't need no millionaire. Just someone who'll care and be a best friend someone to treat me right. 날 위해주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알아보겠다는 곡이다. 남성 아카펠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반주를 한다. 신기했고, 싱그러운 팝재즈같은 분위기를 많이 낸다.

 07track. 미래     작사 작곡: 박정현, 편곡: 김조한 박정현
 피아노 반주가 의미심장하고 가사도 마찬가지다. 단어만 순서대로 몇 개를 나열해 놓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신비한 목소리로 읽어 나간다. 몽환적인 분위기라고 봐도 별 무리 없을 듯 싶다. 한글 작사를 잘 못하는 박정현으로서는 참 작사 잘 했다. 문법이 크게 필요도 없는 가사다. 언어의 장벽만 없다면 컬럼비아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올 A+도 받아봤다는 수재인 그녀에게있어서 노래가사란 제약이 아니고 날개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목금..으로 추정되는 신디사이저의 소리도 곡의 신비한 분위기를 한층 무르익게 해 준다. 내용을 대충 줄여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함께하자고 하는, 그런 내용이다.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가사인 것 같다.

 08track. 그러지 마세요     작사 작곡 편곡: 정석원
 정석원씨 또 혼자 했다. 이 봐라...ㅋㅋ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를 연상케 하는 제목이다. 하지만 아니고, 슬픈 곡이다. 헤어질 때 사랑해서 헤어진다거나 행복하게 지내라거나 하는 거짓말, 동정을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럴거면 차라리 헤어지지 말든가, 아니면 자신에게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하지 말라고. 그냥 메몰차게 돌아서라고 말하고 있다. 현악기가 쓸쓸한 가을 분위기를 내고 있고, 피아노도 따라서 조용하게 반주를 해 준다. 후반에 갈 수록 조금씩 감정이 격해지는 걸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심각해 지지는 않고, 기교가 인상적이다.

 09track. 오늘이라면     작사: 강지훈 황성제, 작곡: 황성제, 편곡: 황성제
 지루하고 바쁜 일상속에 묻혀서 지루함을 느끼다가, 오늘은 왠지 뭔가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하늘이 놀라 실수하듯' 좋은 일이 생길것 같다는 말이 참 귀엽다. 잘 들어보면 들리는 코러스가 아름답고 피아노 반주가 깜직하고 상쾌하다.

 10track. 미아     작사: 윤종신, 작곡: 황성제, 편곡: 황성제, 홍준호
 초등학생도 아니고 미아란다... ㅋㅋ 사실 사랑하던 사람과의 추억속에서 긿을 잃어 빠져나오려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슬픈 상황을 그린 곡이다. 절정부에 반음 올려서 확 질러내는 고전적인 수법은 여기서도 제대로 먹힌다. 평소의 박정현 답지 않게 절정부가 조금 길긴 하다. 하지만 반음 올려서 한 차례만 하고 급속도로 사그러들면서 감정조절을 한다. 현악기를 종류별로 모아놓은 것 같다. 교향악단이라도 차린것 처럼. 스케일이 크고, 약간 전형적인 '좋은 곡'같다. 앨범에 강렬한 사운드를 가진 곡이 그리 많지 않아서 10번 트랙쯤에 적절하게 밸런스를 잡아 둔 것 같다.

    11track. 싱글 링     작사 작곡 편곡: 정석원
 정석원씨, 의외로 활약이 크다. 싱글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정신을 놨나 보다. 절대 공감하지 않는 노래이다. 사랑받는 것이 목표였다가 그것보다 중요한 게 많다고 깨닫고, 사랑에 얽매여 살기 싫다는 곡이다. 이건 자포자기의 가사처럼도 들리지만, 일단 곡의 느낌은 그렇지 않고, 경쾌하다. 진심인 것 같다. 계속 비슷하게 반복되는 중독적인 반주도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독특한 멜로디이고, 'I don't know what to do' 라고 하는 코러스와 반주가 인상적이다.

 12track. Very Thought     작곡 연주: 박정현
 피아노 연주곡이다. 과열된 감이 없지 않아 있던 분위기를 잠시 쉬어가게 해 준다. 앨범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과격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위해서 연주단급으로 움직여야 할 만큼 대곡이 많았고, 편안하게 들을 수는 있었지만, 사람을 이완시켜주지는 않는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흥분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Very Thought가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4살때부터 배웠다던 피아노로 직접 연주한 곡이란다. 알고보니 박정현도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음악 배운 엘리트 음악가였다. 태어날 때부터 노래하면서 태어난 건 아닌 모양이다. 미묘한 곡의 흐름을 잘 잡아준다. 여기서 적절하게 긴장을 풀어 준다면 나머지 노래를 듣는데 좋다. 1부가 끝나고 2부를 시작하기 위한 막간 공연이라고 봐도 좋다. 이 곡이 끝나면 피날레를 위한 곡 2곡이 남아있다.

 13track. Ghost     작사 작곡: 박정현, 편곡: 황성제
 여기서 부터 약간 무섭다. 그로테스크를 제대로 보여준다. 제목이 유령 아니랄까봐 어디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든  곡이다. 반주도 그렇고 목소리도 귀신 목소리 같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 엘프가 마법 쓸 때 내는 목소리를 살짝 연상시킨다.. 

 14track. 하비샴의 왈츠(Miss Havisham's Waltz)     작사 작곡: 정석원, 편곡: 정석원
 피날레는 정석원이 맡았다. 이 노래는 너무나 독특해서 더 신경 쓰이고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곡이다. 제목에서처럼 왈츠 곡이다. 그런데 너무 무섭다. 7,80 년대의 귀신붙은 오래된 오르간의 냄세가 반주에서 난다. 쿵짝짝 쿵짝짝 같은 전통적인 왈츠의 반주가 굉장히 크게 들려서 오싹한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켜준다. 또 빠르게 떠는 바이브레이션과 각종 기교들의 컨셉을 아예 공포로 잡은 것 처럼 몸까지 덜덜 떨린다. 하비샴이 도대체 누구인 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무서운 아가씨인가 보다. 이 노래는 사실 이런 무서운 분위기 때문에 공포영화 '가발'의 OST로 쓰였다. 잘 어울렸을 것 같다. 그대가 좋아하는 대로 긴 머리, 정장, 화장 안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섰는데 그대는 없다는 그런 내용이다. 꼭 그 상태로 죽어서 원한을 갚기위해 남자에게로 찾아 가서 복수할 것 같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던데, 나는 착하게 살아야 겠다. 곡이 점차 진행 될 수록 목소리가 커지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에 '없는 건가요-' 하고 길게 지른다. 반주가 곧 끝날 듯 이어질 듯 하다가 마지막에 '딱' 하고 멈춘다. 마치 영화에서의 프리즈 프레임을 보는 것 처럼 이상스럽게 여운을 남기고 곡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앨범 전체를 놓고 보면 특이한 결말이다. 마지막 곡 치고는 상당히 이색적인 곡이었고, 그 곡 자체로서도 이색적이었다. 마지막까지 실망시키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and...

 아직은 한국어가 자연스럽지 안나보다. thanks to에다가 국 영문 혼용체로 각 각 단어를 영어로 쓰고 조하만 한글이다. 되게 잘난척 하려는 한국인의 모습 같아서 우습고, 귀엽다. 김조한도 앨범에 참여 했는데, 둘이서 만든 곡도 있다.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박정현, 황성제, 강지훈이 가장 많이 참여한 앨범인 듯 하고, 기본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참여했지만, 생소한 아티스트도 있고, 외국인들도 있고, 다양하다. 그래서 작업 기간이 이렇게 오래 걸렸나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낯설면서 익숙한 이런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정현 스페셜은 계속 된다. 쭈-욱.(다음은 1집 PIEC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