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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설

가요제의 '몰락'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가요계를 보면 가요제 출신 가수를 찾기가 힘들다. 젊은 가수들 중엔 찾아봐야, 경북대학교 신화의 마지막 주자 'Ex'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예전의 화려했던 실력파 가수의 등용문으로서의 가요제는 다 어디가고 요즘에 열리는 가요제들을 보면, 가요제라기보단 상금 얼마 놓고 하는 창작가요 노래자랑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변가요제가 없어진 뒤로 대학가요제도 간신히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 오늘내일하는 병자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요제의 몰락이라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로 가요제 출신 가수라고 하면 가수들 중에서도 알아주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커리어였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힘든 시절을 거치며 일류로 키워진 가수의 인간극장에 가까운 성공담이나,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기타하나 달랑 메고 유명 가수를 찾아가서 사사했다는 일대기도 단순히 "저, 가요제 출신 가수입니다."란 말 한마디에 초라하게 무너진다. 

 별 볼일없는 요상스런 인터넷가요제 출신의 가수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수 성시경의 경우 본인은 부끄러워서 숨기고싶어하는 '뜨악 페스티벌'출신 가수라는 사실이 가끔 남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반응은 대부분 '우와, 성시경 다시봤다.'이다. 그만큼 가요제 출신이란 단어는 가수들 중에서도 따로 어필할 필요조차 없는 일종의 '의사자격증'같은 것이다. 신분이 확실하게 보장된다.

 그렇게 명함만 내밀면 알아주는 가요제가 왜 갑자기 이렇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며, 분명 아직도 가요제가 존재하는데 왜 요즘에는 가요제 출신 가수를 보기가 힘든 것일까?

 
 가요제가 쇠락하고 있는 이유는간단하다. 가요제에서 인재를 발굴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가수하나 배출하지 못하는 '권위없는'가요제라면 쇠락의 길을 걷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가요제에서 인재를 발굴해 내지 못하는 것일까?

 일단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예전처럼 대단한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음반시장 침체니 뭐니 해도 일단 '가요계' 자체의 규모조차 축소된 건 아니고, 재능있는 가수 지망생들은 아직도 많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고집센 음악인들의 특성상, 분명히 어딘가에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미완성 밴드'처럼 냄새나는 지하실 방에 갇혀서 자기네들 이름으로 음반하나 내는 것을 목표로 매일같이 음악과 씨름하는, 시대변화에 둔감하고 유행도 못 읽어내는 멍청이들이 한국 뮤지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문제는 가요제 내부에 있을 것이다.

 가요제는 전국 곳곳에 웅크려 있는 숨은 인재들을 찾아내어서 빛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음악인들의 축제이다. 그렇다면 숨은 인재들을 찾기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활동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위치에 오른 아티스트나 평론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해야 한다. 그런데 가요제의 심사위원 명단을 본다면, 물론 대부분 그런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심사위원은 따로 있다. 바로 요즘 인기있는 가수들을 많이 배출해내곤 하는 기획사들의 사장이나 관계자들이다. 이들도 물론 인정받는 뮤지션들이었고, 인재를 알아볼 안목이 충분히 있겠지만, 그런 훌륭한 음악에 대한 식별능력때문에 심사위원 자리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은 현재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는 그런 가수들을 배출해 내는 기획사의 대표이고, 자기 회사에 스카웃 할 만한 재능을 갖춘 '연습생'들을 찾기 위해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들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만한, 상품성이 없는 인재들을 발굴해 낼 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비주얼, 음악, 퍼포먼스, 대중성 모두가 갖춰지는 인재라면 또 모르지만,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실제로 1, 2년 쯤 전의 대학가요제 본선에서 사회자 김용만이 한 심사위원에게 심사기준을 말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여러가지 당연한 심사기준을 읊어 대다가 심사위원이 '얼굴'이라고 말 했는데 김용만은 이를 농담으로 알아듣고 재미없었지만 나름 웃어줬었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가자, 졸지에 심사위원이 말하는데 건방지게 비웃은 꼴이 된 김용만은 웃은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이건 전국의 숨은 인재를 찾는 가요제가 아니라, 자기 회사의 연습생을 뽑는 '전국 기획사 연합회 주최 합동 공개 오디션'이다. 가요제는 숨은 인재를 뽑는 음악인의 축제에서 단순한 공개 오디션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수 많은 가수 지망생들은 이제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으려 노력하고, 발품팔며 열심히 노력해도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은 소속사의 문을 두드리는 데 매달릴 게 아니라, 일단 순위권 안에만 들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또 가수로 데뷔할 수도 있는 쉽고 빠른 길을 택할 것이다. 기획사에서 필요로 하는 자질 몇 가지를 갖춘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단 일단 우위에 설 수 있어서 실상 경쟁률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순위권 안에 드는 게 어렵긴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더 쉬워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추는 경우는 잘 없을 것이다. 그런 쪽이라도 소질이 있는 '일류'들은 각 기획사의 오디션의 문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류들끼리의 경쟁이다. 그들에게서 뭔가 새로운 음악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듣던 곡들을 비슷하게 만들어 와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로 성대모사를 를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이제 그런 2류 가수 지망생들 중 몇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썩 맘에 들지는 않겠지만, 본인들의 심사기준에 따라 그들 중에 하나를 골라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그게 마음에 안든다면 아니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참가자들에게 점수를 줄 수도있다. 

 그렇게 뽑힌 수상자들을 거두어가고 싶은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가요제는 제대로 된 인재를 뽑지도 못하게 되고, 그 권위를 잃고 점점 쇄락하게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대학가요제를 살펴봐도 수상자들 중에 어느 정도 활동을 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가수가 된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좀 전에 예시로 들었던 Ex의 정도 되면 성공한 편이다. 그들은 실력과 함께 어느정도의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겸비한 몇 안되는 경우이기에 그 정도의 성공이나마 거둘 수 있었다. 다른 경우에는, 수상자를 잘못 뽑았느니, 이상하다느니 하는 논란만 생겨나곤 했다.


 가요제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다시 활발하게 번성하려면, 일단 심사위원들부터가 가요제를 자기 소속사에 편입시킬 '낙하산'연습생을 찾는 오디션 정도로 생각하려는 마음가짐을 버려야 한다. 또, 그들이 판단하곤 하는 '상품가치 없는' 인재들이 결과적으로는 상품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가요계에서 몇 몇 아이돌 가수나 비주얼 면에서 탁월해서 크게 성공한 몇 몇 가수들을 제외한다면, 투자대비 효율이 높은 가수나, 앨범 하나로 롱런하는 가수들, 회사 이미지를 높여주는 가수들은 '상품가치 없는' 인재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아주 이상한 음악을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듯 하다. 대중을 완전히 무시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심사위원조차도 완전히 무시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일테니, 찾아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가능한 선에서만 최대한 노력을 해도 충분히 재능있는 숨은 인재를 발견해 낼 수 있다. 결국 가요제를 기획사의 연습생을 구하는 공개오디션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가장 훌륭한 가수를 찾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요제가 몰락한 이유는 가요제가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고, 가요제가 다시 살아날 방법은 초심을 다시 찾는 것이다. '웅크리고 있는 숨은 인재들을 찾아내어서 빛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음악인의 축제'에 가장 충실해 질 때에 가요제는 예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