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대중음악/사설

앨범을 반드시 사야하는 까닭

 요즘 10만 안티팬을 모으겠다며 독설을 퍼붓고 있는 개그맨 왕비호가 어느새 나에게는 호감형 개그맨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요즘엔 독설이 대세라니깐 별에 별 애들이 나와서 설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왕비호의 개그를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는 비호감 개그맨이 아니라 호감 개그맨이 된다.
 
 왕비호 독설의 피해자는 영화배우나 기타 연예인이라기보단 대부분의 경우 가수이다. 하지만 가수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가수에 대한 독설은 그저 귀엽다. 가수가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의 독설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핵심을 찌른다. 이것은 독설이라기보단 팬 입장으로서의 따끔한 충고 수준에 가까워 보인다. 가수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다. 




 왕비호는 가수다. '오버액션' 밴드의 보컬을 맡을 만큼 음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다른 개그맨들이 어디까지나 '개그'로서, 팬서비스의 일환으로서 앨범을 내고 노래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개그맨이라면 왠만해선 하지 않을 문희준의 음악반란 같은 프로그램까지 나와가면서 정열적으로 가수의 혼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냥 개그맨으로서 우연히 잡힌 스케쥴 일 수도 있었겠지만, 개그맨으로서 흔한 일만은 아닌 드림콘서트 같은 곳까지 직접 나와서 가수들을 응원하기까지 했다. 단순이 우연히 음악쪽으로 스케쥴이 많이 잡힌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항상 음악을 사랑해 왔고, 음악계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던 것 같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음악계에 있어서는 안 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나, 실태 등을 파악해서 팬들의 집단 공격을 받는 위험을 감수하고 따끔하게 꼬집어 주는 용기를 보여 준 반면, 새로운 대형가수가 나오면 독설이라는 명목하에 아예 대놓고 언제 앨범이 나오고 콘서트를 언제 한다는 것 까지 가르쳐 주면서 홍보를 해 주었다. 방청석에 가수가 앉아는 경우에는 어이없게도 개그프로그램인데도 가수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이쯤 되면 가수는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된다.


어제인 9월 21일 개그콘서트의 왕비호의 독설이 이번에는 동방신기를 강타했다.

 '동방신기가 움직이면 같이움직이는 카시오페아는 80만, 하지만 앨범은 10만장밖에 안팔린다. 좋아하는 가수라면 앨범 한장씩은 사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라며 동방신기의 구매력없는 카시오페아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동방신기에게 화살이 향한 것이 아니었고, 또한 동방신기 팬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이돌 가수의 10대 팬들, 더 나아가서는 모든 가수들의, 좋아한다. 팬이다. 라고 하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하나 사지 않는 그들의 이중성을 비판한 것이다. 

 사실 요즘같은 세상에서 가수들의 앨범을 사지 않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시대가 어느땐데 누가 요즘에 앨범사서 듣냐? 구시대적이다. 대세는 mp3다' 라는 말로 오히려 앨범을 사서 들으라는 사람을 20세기의 구시대적인 유물 정도로 간주해 버린다.

 물론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 mp3플레이어는 작고 가볍고 편리하다. 이 특징들만 가지고도 크고 무겁고, 노래한곡 듣기 위해서 CD케이스를 한참 뒤져야 하고, 혹시 흠집이 생기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CD플레이어를 mp3보다 훨씬 열등한 기계라고 간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기계들이라는 전제를 빠트리지 않았어야 했다. 

 저작권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것은 우리들의 입장이 아니라 저작권자와 음반 유통업자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시대에 와서 저작권 어쩌고저쩌고 따져가면서 앨범을 사라고 하기엔 우리가 무슨 봉사단체도 아니고, 그들의 생계를 신경 쓸 겨를까지는 없다. 무료로 다운받으면서 저작권 침해만 하지 않는다면, 자기네들이 앨범 장사가 안 되서 굶어죽든 말든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필자는 앨범 살 돈은 있지만 mp3파일을 다운로드받을만큼 돈이 많지는 않다. 어쩌면 역설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mp3파일은 CD에 비해서 훨씬 질이 떨어진다. 길거리에서 어묵을 사먹어도 몇 개씩은 사 먹을 수 있는 큰 돈을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질 떨어지는 컨텐츠를 구입하는 데 쓰기엔 나는 너무 가난하다. 

 자신은 막귀라서 음질이니,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그게 자랑이냐?'고.

 막귀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차이니까. 굉장히 상태가 좋아야 300화음 조금 넘는 mp3파일과 1000화음이 넘는 CD앨범은 비교 할 필요 조차 없다. 앨범을 사서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필자는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데, 가끔 수록곡들 중 콘서트 실황상황에서의 소녀팬들의 '비명소리'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하면서 흠칫 뒤를 돌아 볼 때가 있다. 혹은 익숙하지 않은 타악기들의 소리가 들릴 때, 도대체 어디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지? 할 때도 있다. mp3로 들을 때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CD앨범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때면 이상하게 편안해지고 포근한 기분에 휩싸인다. 물론 mp3파일로 음악을 들었을 때 불편하다고 느꼇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이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의 기계음은 아니었던 까닭이었고, 이미 그것은 단순한 기계음이나 소음이라기보다는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이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음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을 때와의 차이는 확연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mp3음악과 아날로그 음악에 대한 실험이 있다. 임산부의 뱃 속에 있는 태아에게 디지털 음악과 아날로그 음악을 각자 들려주고 그 반응을 조사했었는데, 디지털 음악을 들은 태아의 표정이 찌푸려지고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였던 반면 아날로그 음악을 들은 태아는 편안하게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귀로 느끼지 못하는 차이라도 이미 몸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CD앨범이 아날로그 음악은 아니다. 하지만 대놓고 디지털음악인 mp3와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 진 CD의 차이는 굳이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무손실압축 원음 그대로 mp3파일을 다운받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권장하지는 않는다. mp3파일을 원음으로 듣는다면, mp3의 배터리는 노래 몇 개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제 명을 다 할 것이며, 앨범 하나가 웬만한 영화 한 편과 비슷한 용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mp3플레이어에 몇 곡 넣어보지도 못할 테고, 새로운 노래가 듣고싶으면 수시로 곡을 지우고 다운받고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편함을 무릎쓰고 원음질로 mp3파일을 다운받아서 듣겠고 하겠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기술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커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한 가지 문제가 또 있다. 앨범은 앨범일 때 그 자체로서 가장 완벽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앨범을 만들 때, 케이스의 모양, 디자인, 앨범사진, 곡 배열순서, 편곡의 전체적인 조율과 분위기까지 세세한 것 하나하나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몇 장 들어가지도 않는 앨범 자켓사진을 찍기 위해 비싼 돈 들여가면서 밤을 세워 사진을 찍고 대충 사진 끼워맞추면 될 것을 전문가까지 고용해서 디자인하고, 배열한다. 곡 선택에 있어서도 맘에 드는 곡들 순서대로 대충 끼워 넣지 않는다. 전체적인 유기성을 따지고 앨범 전체의 주제와 분위기에 맞게 곡 배열을 하고, 충분히 좋은 곡이라도 앨범 전체와의 연관성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뺀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엔 지나치게 마니아틱하거나 난해한 노래라도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넣는다. 편곡도 앨범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춰서 앨범을 통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었을 때, 가장 듣기 좋도록 만든다. 

 만약 음악가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앨범 발매를 한다면 이런 비합리적인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정규 앨범이 만 몇천원 정도 하는 가격에 곡 수도 12곡 정도로 꾹꾹 눌러담아 만든다면, 싱글앨범은 고작 몇천원 더 싼 가격에 1~2곡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량은 싱글이나 정규앨범이나 요즘은 큰 차이도 없다. 요즘같이 음반시장 어려운 때에 투자대비 최대의 수익성을 내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장사다. 사실 정규앨범을 내는 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어내는 합리적인 인간 모델이라면 해야 할 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수들은 정규앨범을 내며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음악가로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예전에는 앨범 하나를 사도 앨범의 곡 배열, 자켓사진은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닌 유기적인 작품으로서  배경은 어디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전체적인 채색과 포즈, 의상들이 나타내는 이미지에대해서 심지어는 실제로 의도하지 않았을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과대해석하면서 '놀랍다!'를 연발해댔었다. 생산과정에서의 실수로 앨범 끝이 접혀졌다거나, 인쇄가 잘못되어 있거나 하던 것도 놀라운 제작 기법 중의 하나로 생각하며 감탄하곤 했다. 

앨범은 예술이다. 앨범을 사서, 가사집을 읽고, 이어폰을 귀에 꼽고 듣는 과정, 음악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감정, 생각들까지.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칠 때 비로소 하나의 가장 완벽한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의 예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생각해 보자. 모나리자의 포인트인 리자씨(?)의 눈썹 없는 눈은 모나리자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모나리자의 눈 부분만 잘라다가 예술작품이랍시고 감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예술이 아니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전체적인 모나리자의 예술성에는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앨범도 마찬가지다. 타이틀 곡 한 곡만 떼다 놔도 음악이라 할 수 있지만, '앨범 속의'음악일 때와는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요소들을 깡끄리 무시한다는 것은 앨범 하나를 위해 1년 이상씩도 몸바쳐야 하는 수 많은 음악가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앞으로의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