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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양파 스페셜

양파 스페셜 (5집 The windows of my soul)

 '발라드의 여왕'의 화려한 귀환. 5집앨범은 양파의 6년만의 새 정규 앨범이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성숙한 앨범과 예뻐진 모습으로 찾아왔다. 긴 시간동안 너무도 많이 변해 버려서, 예전의 양파를 잃어버린 듯 해서 솔직히 많이 섭섭한 감은 있다. 하지만 29의 나이에 낸 새 앨범이,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낸 앨범과 같다면 이것은 오히려 양파에게 실망해야 할 일이다. 나이에 걸맞게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이 너무 반갑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 그리고 노래할 수 없었던 가수로서의 슬픔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밝은 모습으로 우리곁에 돌아와 줘서 성공이라 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된 일이 내 일처럼 기쁘다.

 양파의 5집의 제목은 '내 영혼의 창'이라는 뜻이다. 영혼을 비출 수 있는 창이 될 만한 노래들로 만들어졌고, 그녀 자신의 화려한 음악세계를 담기 위해, 활짝 핀 꽃이 만발한 복숭아 밭을 보는 것 만 같은 화려한 앨범 자켓으로 그녀의 컨셉을 잡았다.

 많이 변해버렸지만, 새로운 '양파다움'을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오랜만의 앨범이다 보니, 너무 대중성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다른 가수들이 하는 것 처럼 작업기간+공백기 해서 2년 정도 걸린 게 아니라, 앨범 작업기간만 2년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앨범 제작기간이 많이 길어진 것도, 도중에 갑자기 대중성 있는 음악으로 방향성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앨범 판매량도 8만장 정도 됬다.

 하지만, 이는 대중을 약간 잘못 읽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번 5집앨범은 모든 곡들이 다 사랑받았고 각종 음원차트의 순위에 올랐지만, 그 중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노래들이 특히 상위권에 오른 노래들이 많다. 아니, 대중성이 떨어진다기 보단, 개성이 묻어나는 노래들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우연히 한번 라이브로 부른 뒤로 인기가 급상승해 2번째 후속곡이 되었던 노래 marry me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친절하네요. 그녀를 버려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 비앙 로즈 등과 같은 노래들이 상당히 관심을 많이 받았다. 이것은 대중이 단순히 대중적인 노래를 좋아하지만은 않는 것을 나타낸다. 또 양파의 개성이 묻어난 곡이 대중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곡들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어찌됬든, 완전히 대중을 배제하는 음악만 아니라면, 사람들은 개성이 묻어난 곡들을 더 선호하게 된다. 최근의 음악 경향이 대중성과 음악성이 극단적으로 분리되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대중성보단 음악성이 더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듣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곡이 괜찮다면, 인기를 많이 끌게 되는 것이다.

 앨범 판매량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대중성을 추구하다보니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물론 8만장이라면 2007년도 음반 판매 순위중에서 5~6위 정도는 할 정도가 된다. 상당히 많은 양이다. 그러나 여기서 양파가 좀 더 욕심을 부렸다면, 양파의 개성을 조금만 더 살려줘서 대중성과 음악성의 비율을 좀 맞춰줬다면 올해보다 더 나은 작년의 상황에서 10만장 정도는 거뜬히 넘겨 줬을 것 같다. 음악성이 있는 앨범치고 성공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타이틀 말고 노래를 잘 모르는 토이의 앨범이 그 예이다. 음악성만으로도 그정도의 앨범판매량을 달성할 수 있는데, 토이보단 훨씬 대중성도 있고. 비쥬얼도 어느정도 되고, 토이처럼 6년만에 컴백했다는 장점들에다 음악성까지 곁들인다면 10만장을 넘기는 게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기대인 것이다.

 그러니까, '앨범판매량이 8만장에서 그쳤다.'란 표현을 쓸 수 있겠다. 또 물론 앨범이 좋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곡 선정이나 배열이 잘 됬다고 할 수는 없겠다. 12곡중에서 타이틀곡 같은 노래들이 10곡정도는 된다. 전부다 호소력있는 발라드 곡이다. 2번부터 11번 트랙까지 슬프고 축축 쳐진다. 7번트랙 라 비앙 로즈가 조금 밝은 분위기지만, 크게 밝지도 않고, 밋밋한 기분을 이어간다. 이래서는 곡별로 리뷰를 쓰려고 해도, 쓸 말이 없다. 반주도 비슷하고, 멜로디만 다르다. 목소리도, 창법도 왠만해선 같아서 새로운 단어를 써 내려가는 데 창의력의 부족을 느낀다. 앨범 리뷰를 그래서 약간 대충대충 쓴다는 감이 있을 수도 있다. 다 비슷비슷하니까 적당히 이럴 것이다. 생각하길 바란다. 앨범이, 솔직한 감상으로, 식상했다. 늘어지고, 잠온다. 느릿느릿하고 똑같은 노래를 계속 듣는데 잠이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필자도 처음 앨범 샀을 땐 괜찮았지만, 나중에는 금방 질려서 사실 한 몇 달간 보관함에 쳐박아 둔 채로 듣지 않았었다.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앨범들이 많은데 이미 질려버린 앨범을 수고해서 들어 줄 필요는 없다. 솔직히 이게 다 소속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뮤지션들에게 훌륭한 작업환경과 보수도 제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여건까지 다 갖춰 준다는 건 고맙게 생각하지만, 음악을 다루는 회사같지는 않다. 음악으로 장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좀 아쉽다. 

 비판은 이정도로 하겠다. 곡 배열과, 밸런스. 이것만 제외하고는 좋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진다. 앨범 사려다가 '앗' 하고 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일단은 왠만한 앨범보다는 괜찮으니까 사라고 말하고 싶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다. '최고의' 앨범이 되기에 조금 부족했다는 뜻일 뿐이다.

 버클리에서 음악을 참 제대로 배워왔나보다. 조용조용하고 피아노 반주에 기껏해야 잘 들리지도 않는 드럼으로 박자만 맞춰주는 어쿠스틱한 남자 발라드와는 다르게, 클레식에 가깝다. 원래부터 여성발라드는 그런 웅장함이 있긴 했었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현악기 세션이 제대로 배운 티를 확 풍긴다. 박정현 6집에서의 현악기 세션과는 조금 다른데, 이건 그냥 클래식이다. 반주부터가 가슴을 울리는 게 엘리트 의식이 제대로 묻어나온다. 물론 앨범 컨셉이기도 하다. 

 호소력있는 목소리는 따로 더 강조하기도 힘들다. 물론 양파와는 스타일이 많이 다른 여성 발라드 싱어긴 하지만, 양파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앨범을 낸 이수영이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수영은 가벼운 목소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까지는 여성보컬치고 호소력있는 목소리 축에 속했었다. 하지만 양파열풍으로 호소력의 절정을 달리는 목소리를 듣다가 이수영 목소리를 들으니 그게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라고 개인적인 생각을 조심스레 펼쳐 본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다가 약간 밋밋한 음식을 먹으면 맹물처럼 느껴지는 것 처럼. 물론 이수영의 실패에는 다른 영향들이 많지만, 이건 그냥 그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이니까, 신경쓰지 말자. 노래 형식이 많이 바뀌었다거나, 텔미가 너무 성공하는 때문에 확 묻혀버렸다거나 하는 기타 이유가 많다.



album

   
 1. marry me     작곡 작사: 양파, 편곡: MIHO
 비밀은 어디에있나요...할때의 그 미호가 편곡을 해 주었다. 참 실력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여성프로듀서중의 한 명이다. 간드러지는 바이브와 가성이 참 달콤하다. 'Kiss Kiss Kiss'부분에서 온 몸의 힘이 쫙 쫙 빠지면서 엑스터시를 느낀다. 팬들이 그 부분에서 뭐라고 따라하곤 하는데,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가수들 노래하는데 따라하고 그러는거, 응원하는 입장에서 가수들한테 큰 힘이 될 수는 있겠지만, 감상하고싶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별로다. 분위기 깨는 거다. 상황파악 잘 해가면서 하자. GOD의 '거짓말' 같은 곳에서 팬들이 하나되어 'G O D 짱!' 외치는 부분은 거의 눈물날려고 할 정도로 좋았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아무데나 남발하지말고 적당적당히 하자. 희극적인 노래와 멜로디이고, 실제로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 섹소폰으로 간주하는 부분도 희극적이라 너무 멋지다. 브로드웨이를 그대로 옮겨 논 듯 하다. 후속곡 활동 할 때도 그런 컨셉을 잡아서 간단한 율동과 배경이 곡과 잘 어울렸고, 이국적이었다.

 2. 나 때문에     작곡: 김도훈, 작사: 최갑원, 편곡: 김진환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여성발르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신을 버린 남자에게 '나 때문에'헤어졌다고 사람들한테 말하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남자를 나쁜남자라고 욕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다. 후반부에 갈 수록 슬슬 본심이 나오는데, '니가 행복하지 않기를 빌거야'라고 해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마지막의 가사가 '제발'이다. 아주아주 애절하고 슬프다.

 3. 사랑.. 그게 뭔데     작곡: 박근태, 작사: 강은경, 편곡: 신민
 원래 클래식 곡을 샘플링해서 그런지 웅장하고 제대로 클래식스럽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적인 중독성있는 멜로디에 슬픈 가사, 호소력있는 목소리에 발라드에서의 필수요소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난다. '대중성'이라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랜만에 복귀한 양파가 2007년 음악을 주름잡아 버리는 데 한몫 단단히 한 일등공신이다. 

 4. 한 사람     작곡: 김도훈, 작사: 윤사라, 편곡: 김도훈
 전형적인 발라드 곡이고 대중성 있지만, 아무 생각없이 앨범 들을땐 그다지 관심 쓰이지 않는 곡이었다. 곡 배열때문인데, 3번트랙이 타이틀이고 5번트랙이 후속곡이다. 이 사이에 끼어있는 곡의 존재감이란... '안습'이다.

 5. 그대를 알고     작곡: 김도훈, 작사: 윤사라, 편곡: 신민
 김도훈과 윤사라가 4번트랙을 밟고 올라섰다. 어차피 본인들이 쓴 곡이지만. 후속곡 투표할 때 팬들의 과반수 이상이 이 곡을 선택했을 정도로 강한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 절정부가 상당히 길지만 완급조절을 어느정도 해 가면서 절정부를 불러내기 때문에, 그렇게 식상하지는 않고,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6. Love Letter     작곡: 김도훈 민명기, 작사: 최갑원, 편곡: 김도훈
 어디있는지 모를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내용이다. 슬프고 아픈노래를 양파만큼 잘 부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7. La Vie En Rose     작곡: 이승환, 작사: 양파, 편곡: 이승환
 양파씨, 가사 너무 잘쓴다... 너무 사랑스럽다. 전곡 다 작사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마니아틱해서 일부러 많이 배제시켰나보다. 6집앨범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작곡한 것도 좀 마니아틱한 터라 많이 뺀 듯 하다. 오랜만에 살짝 밝은 곡이다. 노래 제목부터 사람 이름인데, 계속 듣다보면 가사중에서도 '팀 버튼'이 나온다. '기대했던 팀 버튼씨, 사실 어제해 준 얘기보다 재미없던걸.'이라고 한다. 아마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내용일 것으로 추측한다. 가사와 멜로디의 분위기가 미리 맞춰 놓은 것 처럼 잘 어울리는데, 이승환이 작곡했다. '그대 아니었다면'으로 듀엣도 한 가수라 그런지 호흡이 잘 맞는 듯 하다.

 8. 울지 않는 법     작곡: 황성제, 작사: 양파, 편곡: 황성제
 이별노래다. 이별을 하기 위해 울지않는 법을 연습하려고 하는 데 잘 안 되나 보다.

 9. 기억해     작곡: 이승환, 작사: 윤경, 편곡: 이승환
 같은 멜로디로 '기억해'란 단어를 계속해서 강조해서 반복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며, 어느정도 중독되는 것을 느낀다.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곡: 김진환, 작사: 양파, 편곡: 김진환
 양파는 정말 작사를 너무 잘한다. 이 정도 작사실력이면 시집을 내거나, 전문 작사라고 활동해도 일류가 될 수 있을 만한 작사 실력을 가졌다. 역시 공부를 잘 하면 다른 것도 다 잘 하더라. 공부 잘하는 애가 음악도 잘 하고 체육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 신은 공평하지 않나보다. ... 어쨋든 그런 양파다운 작사실력을 잘 살린 곡이고, 멜로디도 상당히 괜찮다. 이런곡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게 좀 아쉽다. 살짝 이상한 음으로 고음과 저음을 왔다갔다 하면서 부르는 게 생소해서 재미있다. 제목이 영화 'Love Letter'에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책 제목과 같은데, 앞서 6번 트랙의 곡 제목이 'Love Letter'인 걸로 봐서 뭔가 영향이 있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11. 그녀를 버려요     작곡: PJ, 작사: 양파, 편곡: 김승현
 신나는 노래다. 재즈바에서 불러야 할 것 같고, 진취적인 여성상이다. 대놓고 '그녀를 버려요' 라고 외치는데, 몇 안되는 신나는 노래라 더 의미가 깊고, 살짝 굵고 간드러지는 바이브레이션으로 곡을 살린다. 11번  트랙을 듣기 전까지는 양파는 이런 노래를 못 부를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이 노래를 듣고나면, 오히려 '이런 노래에 잘 어울리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12. 친절하네요     작곡 작사: 양파, 편곡: 정재일
 살짝 그로테스크 한 감이 있다. 친절하지 않은 걸 반어적으로 친절하다고 하는 제목자체가 으스스하다. 느린 박자로 천천히 끌어올리고 천천히 끌어내리는 창법이 간드러지고 곡의 분위기에 잘 맞는다. 전통적으로 공포영화에나 쓰일 법 한 반주를 하고 있는데, 하나부터 끝까지 무서운 느낌이다. 절정부로 넘어가는 통로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소름이 돋을 수도있으므로, 밤에 듣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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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앨범 낸 양파가 예전의 양파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불렀는데, 하나도 예전같진 않았다. 살짝 비슷한 음악을 들고 오긴 했겠지만, 예전같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전한 양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안 좋은 소리를 조금 하긴 했지만, 2007년의 명반 몇 개를 꼽으라면 반드시 꼽히는, 그런 명반인 앨범들이다. 전혀 하자없는 앨범이란 잘 없고, 그런 앨범이라면 2007년의 명반이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명반 100개를 뽑는 순위에 올라가야 할 정도이므로, 이 정도면 참 맘에 드는 앨범이다. 다음 앨범이 상당히 기대되는 가수중 한 명이다. 

 6년만에 컴백했었는데, 요즘 또 소속사가 문제를 일으켜서 양파만 불쌍한 모양이 되었다. 양파가 직접적으로 연류된 건 아니고, 소속사 끼리의 문제가 생겼는데, 자칫 이 형국에 앨범 잘못 냈다간 이중계약으로 고소당할 입장에 놓여서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다고 한다. 대형가수의 설움이다. 이번 가을쯤에 6집 앨범을 내기로 했다고 모자란 제작시간을 불평해서 매우 바쁘게 살아왔던 양파가 이런 고비를 단순히 살짝 쉬면서, 더 좋은 앨범을 내기 위한 기간 정도로 생각해 줬으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