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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

[서론]

 01. 홍상수 감독의 벽

  홍상수 감독은 1980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연출전공으로 입학해서 1983년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예술학교 예술학 석사학위를 땄다. 한국으로 돌아와 강사, 영화제 심사위원, PD, 교수 등을 전전하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연출하게 된다. 이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들을 받으며 주목받는다. 1998년에는 '강원도의 힘'으로 칸 영화제 공식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특별 언급 상을 받고, 2000년에 '오! 수정'으로 또다시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다. 2004년에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올해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감독 주간에 초청되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수많은 국내·외영화제에서 수상이나 초대를 받았으며, 그 간 그가 찍은 작품 편수도 10편이나 되는 베테랑 감독이다. 그러나 이토록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홍상수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하나 있다. 바로 흥행 감독의 벽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아무리 잘 해 봐야 흥행은커녕 200만 관객도 채 넘지 못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된 훌륭한 영화 감독인데도, 이토록 인기가 없는 이유는 언뜻 생각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02. 접근


  모든 일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우리가 판단 할 수 있는 이유건 없는 이유건, 원인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오늘 어머니께서 아침으로 해 주신 김치찌개와 멸치볶음에도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는데,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 할지라도 인기가 없다면 그 나름대로 구체적인 이유가 존재할 것이고,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영화 외적인 면, 그리고 영화 내적인 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인데, 먼저 영화 외적인 면은 배급구조나, 개봉관, 등 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요인으로 인해 결정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하고 큰 단위로 요약해 보자면, ‘마케팅’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 내적인 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편견이나, 사회구조, 관객과 감독간의 코드 등이 있지만 요약하자면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정도가 되겠다.



 03. 영화 외적 요소


  우선 영화 외적인 요소에 대해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마케팅의 부재이다. 마케팅 비용이 얼마냐, 배급사가 어디냐에 따라 개봉관 수가 달라지고, 어떻게 돈을 쓰느냐에 따라 흥행여부가 달라지는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마케팅보다 더 중요한 변수는 없어 보인다. 영화 외적인 문제라 하면 마케팅과 관련한 금전적인 문제 말고도 정치적인 외압이나, 불매운동 따위의 요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가정된 특수 상황이고, 한 번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10여 년 동안 홍상수 감독에게만 발생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자본의 탓을 할 수도 없는 게, 10여년이 넘게 영화감독을 해 오면서 지금까지 10편의 영화와 함께, 수많은 국내·외 영화제 수상 경력을 가진 중견 감독이 비 흥행 감독인 이유가 단지 그 뿐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억지가 심해 보인다. 아무리 우리나라 영화업계가 돈이 없으면 흥행을 할 수 없는 구조 하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괜찮은 감독이라면 각 배급사에서 앞 다퉈 돈을 대 주겠다고 나서는 것이 자본주의의 마케팅 아닌가. 



 04. 영화 내적 요소


  그렇다면 영화 내적인 요소인,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 경우에서 시선이란 감독의 시선, 관객의 시선 둘 다를 뜻하는 것으로, 영화감독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이 부조화를 이루었을 때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을 뜻 한다. 영화감독과 관객의 시선의 차이는 감독의 유형에 따라 달라지는데, 감독의 유형에는 작가주의1) 감독, 그리고 대중주의2) 감독,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대중주의 감독은 대중들의 시선에 맞추어서 그들이 좋아할 만 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05. 작가주의


  홍상수 감독처럼 국내외로 인정받으면서 흥행을 하지 못하는 감독은 적어도 대중주의 감독은 아니다. 훌륭한 대중주의 감독이라면 기본적으로 흥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즉 홍상수 감독은 작가주의 감독이란 뜻인데, 물론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해서 다 흥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사회 문화적 배경이 받쳐주고, 감독 자신의 코드가 관객들과 '우연히' 맞아 떨어지게 된다면 작가주의 감독이라도 흥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홍상수 감독의 코드는 대중들의 것과는 달랐고, 대중들은 그의 영화를 배격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홍상수 감독의 어떤 면이 대중들과 그와의 거리를 두게 했을까? 그에 대한 분석을 내용과 영상과 음악,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보겠다.



[본론]



 01. 내용


 (1)사실주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홍상수 감독의 특징이 꽤나 많은데, 우선 그로인한 첫 번째 특징은 영화가 지극히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생활을 하다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는 사건과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와 욕을 쓰고, 평상시 그런 상황에서라면 쓸 법한 분위기 쇄신용 잡담이나 농담을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하게 선택된 ‘영화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여타 영화들보다 현실감이 있으나, 문제는 너무 지극히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동네 아는 형이나, 학교 동기의 사적인 생활을 의도치 않게 훔쳐 본 듯 한 느낌이 든다. 친구가 자신의 애인과 전화 통화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친구의 사생활이라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상황이 불쾌해지는 것과 같다. 타의적으로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감독은 이 같은 사실성을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놓았다. 일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다 보니, 그것이 반드시 타인의 일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평상시의 본인의 생활을 몰래카메라로 찍어뒀다 보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 기분만 상상해 보아도 이미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주의는 주인공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극에 몰입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대중의 입장이라면 이런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본인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러한 생각 때문에 뭔지 모를 찜찜함을 느꼈었다. 홍상수 감독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가지 장치를 두어서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중점을 뒀는데. 진솔한 모습이라지만, 사실은 인간의 추한모습, 이중적이고 비열한 모습 등을 많이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짜 낸듯한 내용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스럽고 현실성 있게 다가와서 '봐라, 너네 한국인들은 원래 그렇게 추잡한 종족들이야'를 말 하는데 오히려 이 영화가 진짜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여과를 거친 가짜 모습인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2)남녀관계

  남녀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홍상수는 인간의 욕망을 억지로 억누르는 설정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이런 면에서는 사실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욕망은 억누르는 것 보다는 분출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라는 의도를 나타내려 했을 수도 있겠다. 홍상수 감독의  사실주의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맞겠지만, 편견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불륜이나 강간, 원 나이트 스탠딩 등 정사신이 굉장히 많은데, 남성의 사고로 해석된 성의 모습이다 보니, 남녀관계를 너무도 쉽고 간단한 것으로 묘사해 버려서, 페미니즘 성향을 지닌 여성들에게는 거부감을 주기가 쉽다. 여성의 경우에는 이것들을 실제와는 많이 왜곡된 것이라고 해서 거부하지만, 사실 남성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모든 남성들이 실제로 그렇게 문란하게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늘상 하곤 하는 상상이나 가정 들을 그대로 들킨 기분이라서 당황스럽고 거부하고 싶다. 또, 성관계를 일반적인 '사랑'이라는 코드에 맞추어서 그 아름다움이나 예술성 등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해석은 최대한 자제하며, '성관계'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굉장히 사실에 가깝게 표현을 했다. 잠시 후 영상에 대해서도 설명하겠지만, 카메라가 고정된 채 많이 움직이지도 않아서 몰래카메라로 사생활을 들키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3)비유와 상징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대게 한 두번 본 것으로는 도저히 분석이 안 되는 내용이나 화면이 있다. 분명히 뭔가 의미가 있긴 할 텐데, 도저히 파악 해 낼 수 없다거나-혹은 없는 것 같다거나-, 내용과 내용이 서로 유기적이지 않은 것 같아 이해가 안 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내용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아무거나 주워다 내용으로 썼거나, 관객이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스토리가 엉성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두 번, 세 번 꼬인 비유 혹은, 유추 가능한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징을 통해서 의미를 꽁꽁 숨겨놓았을 뿐이다. 비유나 상징은 영화를 함축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좋은 수단이지만, 그것이 관객의 결정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까지 확대되어 버리면 관객의 수준에 따라 그저 앞뒤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엉터리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히 관객의 수준 낮음을 탓할 수는 없다. 관객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이해력을 기대할 수는 없고, 상징물에 대한 이해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서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대중을 고려하지 않은 영화는 결국 대중에게는 더더욱 엉터리 영화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4)메시지

  영화를 감상하고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관객의 평을 알 수 있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주로 '도대체 뭘 본거지?' 라거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어쩌라고?' 같은 부류의 것이다. 이것은 영화 속에 '메시지'가 결여되어 있거나, 꽁꽁 숨겨져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인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경우에는 '환경을 보호하자'라거나 '착하게 살자' 같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어떠한 현상을 '표현'하는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체에 감독의 사상이 실려 있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꼴이 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영화에서의 '메시지'와는 다르다. 감독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여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현상, 혹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생각, 판단 등을 나열하고 관객 자신이 알아서 메시지를 찾아내는 식인 것이다. 하나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해 놓고, 그것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내용을 개연성 있게 정리하는 것이야 말로 일반적인 영화의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홍상수 감독의 경우는, 내용을 개연성 있게 정리하거나 나열할 수는 있어도,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내용 전개를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관객의 눈에는 주제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주제의식이 없는 영화는 깊이도 없어 보인다. 아무리 웃긴 유머를 늘어놓는다 해도 보는 내내 기승전결 없는 지루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러닝타임이 충분히 길고 충분히 지루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날 때는 마치 발단-전개 단계에서 결말이 나 버린 듯한 허무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보통 단편영화를 보았을 때 상영시간이 너무 짧다 보니 갈등구조를 만들어 낼 시간도 부족하고, 전개도 탄탄해지지 못해서, 긴장감도 없이 영화가 끝나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모순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대중들에겐 그저 2시간짜리 단편영화일 뿐이다.



 02.영상


 (1)영상미

  다른 작가주의 감독에게도 영상은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 김기덕 감독의 경우에는 영상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 등에 매우 중점을 둬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의 경우에는 영상의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는다. 색 대비로 인한 갈등 강화나, 화면 내의 요소들을 통한 상징에는 신경을 쓰지만, 배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사실적인 표현을 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 인공적인 조명이나 후반 작업도 자제했다. 실제로는 보기 힘든 후광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과 초록색으로 빛나는 호수의 전경을 넣지 않는 대신, 햇살이 쨍쨍 내리쬐서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나 형광등 조명 아래서의 실내의 모습 등을 성공적으로 묘사했다. 카메라의 눈과, 관객의 눈이 일치가 되는 듯 한 감흥을 주는 데 있어서 성공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적이고 구질구질한 것보다는 판타지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대중인 만큼, 심미적인 영역에서는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 힘들겠다.


 (2)카메라

  과거의 우리나라 영화와 현대의 대중영화를 비교할 때, 주목해서 살펴보아야 할 점은 화면전환과 초점 변화일 것이다. 과거에는 화면의 전환이 느렸고, 카메라 위치나 초점이 비교적 고정되어 있어 정적인 느낌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요즘의 영화는 화면이 빨리빨리 넘어가고, 카메라도 끊임없이 움직여 역동적인 느낌을 많이 주곤 한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과거의 형식으로 돌아간 것처럼 화면 전환도 느릿느릿하게 이루어지고 카메라도 특정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옛날 영화의 낭만이나 화면에서의 여백의 미, 침묵 등을 느끼지 않고, 다만 뭔가 답답하고, 구식이라는 느낌만 받을 뿐이다. 뭐든지 빠르고 정신없는 것만을 선호하는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03.음향


 (1)음악

  홍상수 감독은 작가주의 감독답게 영화의 음악에 깊은 의미를 부여해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너무 조심스럽게 사용한 나머지 음악 그 자체가 주는 감상 때문에 영화 흐름을 방해한다거나 영화 자체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장면에서 음악을 듣지 못한 채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홍상수 감독은 집중이 필요하거나 중요한 장면일수록 음악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데, 이는 현대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나 전개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과 구별된다. 돌려 말하면,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에서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장면의 분위기나 상황파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음악이 들어가더라도 음악에 대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의미 있는 음악만 사용하는데, 너무 음악의 ‘의미’에만 치중한 나머지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괴기한 음악이나, 장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의 사용으로 판단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음악 역시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원인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음향

  영화를 보는 데 있어 내내 음악이 최소한으로 들어간다면 반대로 부각되어야 하는 점은 음향효과이다. 음악을 넣지 않는다고 해서 무성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음악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에서만 최소한으로 들어가고 음향효과에 최대한 중점을 준다는 것은, 음향역시 사실주의에 기초했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 우리가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상황에 따라 그 상황에 맞는 음악이 나온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향과 음악과 따로 떼어서 생각 할 게 아니고, 위와 같은 의미에서 파악하면 되겠지만, 음악 없는 소리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고, 관객들의 몰입도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결론]



 01. 정리 


  지금까지 홍상수가 흥행하지 못했던 이유를 영화의 내용과 영상, 그리고 음악에 맞추어 설명해 보았다.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어떠한 걸름 기능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실주의와, 영화 흐름 이해에 방해를 줄 정도로 복잡 다양한 상징과 비유, 그리고 메시지 소통의 부재가 있었고, 영상적인 부분에서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구질구질한 화면과 느리고 정적인 구식의 화면전개가 있었다. 음향에 있어서는 역시 사실주의에 기초해서 사용되는데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음향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고,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깊은 의미를 담은 음향효과를 사용한 것이 관객들의 극에 대한 이해를 떨어뜨렸다. 조금 더 개괄적이고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감독과 관객의 코드의 불일치로 이루어 진 것이며,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홍상수 감독의 작가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02. 장인정신에 대한 박수


  그러나 작가주의건 대중주의건 그것은 감독의 성향의 하나일 뿐, 작가주의라 해서, 또는 대중주의라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 하고, 스스로가 추구하는 이상을 훌륭하게 실현한다면 그 성향에 관계 없이 훌륭한 감독이 될 것이고, 자신의 영화적 성향에 대해서 충분한 깊이와 확신이 없다면 적어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내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당당하게 그것을 영화로 구현해 나가는 홍상수 감독에게, 왜 그런 이상한 영화를 만드느냐는 비난을 보내기 보다는, 그의 영화인으로서의 장인정신에 대해 박수를 쳐 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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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보고서로 썼던 내용을 수정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