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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이 시대의 '마지막 발라드싱어' 성시경 (6집 여기, 내 맘속에)


 성시경은 자칭, 타칭 20세기의 마지막 발라드 싱어다. 성시경의 뒤를 잇겠다는 수 많은 발라드 가수가 생겨나고, 또 사라졌지만, 진정한 의미의 발라드 싱어는 그가 마지막이다. 새로운 발라드싱어가 나오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 발라드라는 장르는 사라지게 될. 어쩌면 이미 사라지고 있는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20세기의 아날로그적인 감성들을 21세기에서 다시 찾기는 힘들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대로 마지막 발라드 가수가 되어, 넘겨지는 페이지를 따라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이번 6집의 컨셉은 '정리하는 마음'이다. 전체적으로 그간의 가수활동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만들어 진 독백적인 앨범이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우리 곁을 떠나는 시간은 2년 남짓한 그리 길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2년이상의 공백기를 갖는 가수들도 많다. 하지만 자의적이 아닌 타의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 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도 자신이 발라드가수라 칭할 만한 감성을 유지하고 있을 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간의 가수활동을 정리하는 마음을 한층 차분하고, 무겁게 한다.

 6집이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6즙. 가수가 6집을 내기 전까지의 시간은 가수의 완전한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간이다. 그런 6번째 앨범에 그간의 가수활동을 모두 정리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담아넣었다. 빠듯한 앨범 제작시간이지만 우리의 가슴을 자극하는 명반이 튀어나올거라는 기대는 결코 큰 기대가 아니다.

 훌륭한 앨범이다. 성찰적인 독백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말들이 감성을 울린다. 발라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감성과 분위기'면에서 100점만점에 200점을 줘도 모자라다. 그 간의 성시경의 앨범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는 앨범이다. 슬픈 이별의 노래나, 애틋한 사랑의 느낌을 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다르다는 느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별노래의 달인' 윤종신의 공백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 접하게 되는 노래들을 듣고 가장 성시경 답다. 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한 인간으로서의 성시경의 모습과, 그의 노래가 너무도 닮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것 하나를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것 10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어쩌면 그 동안, 그는 좋아하는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노래들을 불렀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좋아하지 않는 연애버라이어티를 나갔을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인 라디오.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는 성시경의 감성과 아날로그. 음악세계를 우리에게 잘 표현해 주었다. 그러나 라디오를 진행하는 내내 그는 어쩌면 '잘난 척'이라고 비춰질 수도 있을 법한, 자신의 뮤지션으로서의 감성이나, 음악세계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 줬다. 조금쯤 발라드 가수로서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필자도 자신만이 감성을 중시하는 가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그 잘난척의 불쾌함을 조금은 느꼈었다. 그가 해 왔던 음악과, 그의 말들에서 모순이 느껴진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깊이 공감하기는 조금 힘들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만 담았고, 라디오에서의 솔직했던 모습과, 너무도 닮은 앨범이다.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조금 다르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어느정도 대중친화적인 발라드만 불러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가장 성시경답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만 담은 앨범을 남기고, 잠시 우리곁을 떠났다.

 앨범 첫장을 넘기면 뭐라고 글씨를 남겨놨다. 친필로 쓴 듯하다.(사실 가사를 제외한 모든 글씨들이 그렇게 쓰여 져 있다.) 1번트랙의 노래가사와 비슷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주면 이내 늘 그렇듯
사랑한 기억도 쓰라린 아픔도
손등위의 오랜 흉터처럼
희미해져 가겠지
잊혀진다는건 슬프겠지마는
아프게 남는것 그것보단 괜찮아.


 또 앨범의 가사집의 마지막 쯤에 친필로 쓴 듯한 글씨로 팬들에게 쓴 편지가 있다. 하나하나 차분하고, 성시경 다운 말들로 쓰여 져 있다. 이번 앨범의 모든 곡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데뷔 9년차, 서른, 6집 앨범

 시간이 참 빠르죠.
 이렇게 또 저렇게 해서 앨범 한장이 또 마무리가 되었네요.
 Thanks to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앨범을 쭈욱 들어봤어요.
 난 썩 마음에 드네요.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천팔년을 강타할 베스트셀러 혹은 명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난시간동안 절 아끼고 좋아해주셨던 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빠듯한 시간, 진심으로 곱게곱게 예쁘게 포장하고 준비했습니다.
 기다려달라는 얘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기다려요 기다리긴.
 잘 지내주세요.
 건간하게 부지런하게
 다시 만날 준비가 되면
 제가 찾아갈게요.
 따뜻한 마음. 고마운 기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아있어요.
 선명하게
 그 자리 그 곳에
 여기 내 마음속에...
 앨범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자리 그곳에 여기 내 마음속에'는 1번 트랙 '여기 내 맘속에'의 마지막 가사이다. 그리고 '여기 내 맘속에는' 앨범 타이틀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모두 알 수 있다.

 참여한 아티스트들을 본다면.... 이 시대 최고의 감성집단을 모아서 만든 앨범이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굳힐 수 있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싫다. 굳이 나열하는 게 이들에 대한 내 존경심을 더 부각시킬 것 같지도 않다. 이들도 성시경에게라면 자긴의 모든 재능을 쏟아주고 싶을것이다. 데뷔할 때부터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았으니까... 왜냐면, '성시경은 술을 잘 마신다.' ...농담이다. 분위기가 너무 센티해진 것 같아서......ㅋ

 전체적으로, 조용조용하게 노래를 쉽게 부른다. 예전처럼 막 힘들게 질러대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가 따라부르려면 막 힘들게 질러대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노래같지는 않고, 쉽게 부르는데, 따라하는 건 왜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반주도 조용조용하고, 멜로디가 참 감미롭다. 발라드 앨범답게, 타악기가 거의 배제되어있다시피하다. 그러면서도 리듬감을 잃지 않기 위해, 현악기, 관악기, 건반악기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많은 악기를 쓰면서도 화려한느낌보다는 조용조용하고 어쿠스틱한 느낌을 주는 아이러니함의 원천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이시대 최고의 감성집단들이 모여서 만든 곡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로 전개되지만, 이전에 소개했던 양파5집과는 달리, 많이 들어도식상하지 않다. 물론 곡 별로 리뷰쓰는건 힘들다만.....-_-;;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촛점을 둬서 작성하도록 하겠다. 가사가 정말, 너무너무 아름답고, 한 편의 시들같다.) 애초에 그런 독백같은 마음가짐으로 쓴 앨범이라 그렇고, 남성 발라드는 여성과는 조금 달라서, 분위기를 많이 강조해야되는데, 갑자기 그걸 확 깨버리면 듣다가 기분 잡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한다면 또 모르지만.. 이번 앨범은 그런 분위기와 감성상태가 굉장히 좋아서, 앨범을 다 듣고나서 한참동안 여운이 남는다. 신승훈과 성시경이 그토록 간주하던 '후주'이다. 노래 한 곡 들었을때만 후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앨범 하나를 다 들었을때도, 그런 여운을 남게 한다.

 마지막으로 성시경은 '엄친아'라고 덧붙이고 싶다. 공부는 어지간히 잘 해야 말이지.. 영어도 잘 해서 박정현, 김조한, 성시경 셋이만나면 영어로 대화한단다. 양파랑도 친하다. 그리고 이적, 김동률.... 공부 잘하는 부류끼리만 몰려다닌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학연이 문제라는거다. 가수들도 엘리트끼리만 모이나? 이거, 공부못해서는 가수해먹기도 힘들겠다. 쳇.

album


1. 여기 내 맘속에     작사: 성시경, 작곡: 유희열, 편곡: 강화성
 '사랑이든 일이든 내가 사랑하는 걸 정리해야 한다는 건 맘이 너무 힘든일.' 꼭 이번 앨범을 군대에만 연관짓는 사람들이 있는데, 꼭 군대를 간다고 이렇게 모든 걸 정리하고 슬퍼하는 건 아니다. 떠나야 한다는, 그런 상황 자체를 놓고 슬프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잊혀진다는 것에 적응하려고 한다. '잊혀진다는 건 슬프겠지마는, 아프게만 남는것 그것 보다는 괜찮아.' 그래도 좋은 기억들은 더욱 선명하게 남는다는것. 그것에 기뻐하고 있다.

2. 어디에도     작사: 허승경, 작곡: 김광진, 편곡: 박용준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나를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언젠간 마음을 열어달라고 하고있다. '어디에도' 버리지 못하는 맘이라는 뜻의 제목, '어디에도'이다.

3. 더 아름다워져     작사: 심현보, 작곡 편곡: 김현철
 '사랑이란게 어쩌면, 둘이란 게 어쩌면 스쳐가는 짧은 봄날 같아서. 잡아보려할수록 점점 멀어지나봐. 기억은 늘, 쓸데없이 분명해져. 다시 니 눈을 보면서 사랑해 가볍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노래를 듣고, 또, 가끔은 날 생각하기는 하는지. 어느새 또 세상은 너 하나로 물들어. 추억이란 자고나면 하루만큼 더 아름다워져.' 심현보와 김현철은, 만만하게 생각할 위인들이 아니다. 휴, 빠져나올 수 없는 곡이다.

4. 안녕 나의 사랑     작사: 유희열 작곡: 유희열, 성시경, 편곡: 황세준
 타이틀 곡이다. 너무 축축 쳐지는 곡들을 타이틀 곡으로 정하기에는 인기가 조금 신경쓰였나보다. 다른 곡들 보다는 살짝 빠른 미디엄템포의 경쾌한 곡이다. 하지만 가사를 생각한다면, 이별노래다. 아주 슬픈 이별노래이다. 이별을 미화해서 말하고 있어서 훨씬 더 슬프다. 눈물을 땀방울이라고 생각하려 하고, 길 건너멀리 보이는 그대가 발끝만 쳐다보는 것을 지루해서 그랬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런노래가 대 놓고 슬픈노래보다 훨씬 슬프다. 럼블피쉬의 '으랏차차'를 들을 때 처럼 눈물이 나려고 한다. 최대한 슬픈감정과 행동들을 밝게 표현하려고 하지만, 넘치는 감성을 주최할 수가 없나보다.  '눈물이 흘러. 아니 내 얼굴 가득히 흐르는 땀방울. 나 없을때 아프면 안돼요. 바보처럼 자꾸 울면 안되요. 괜찮을 거야. 잘 지내요 그대. 나의 사랑그대 안녕.' 모든 노래가 너무 좋고 훌륭한 아티스트가 참여해서, 각 각 곡마다 '너무 대단하다'란 단어를 함부로 쓸 수도 없다. 모두 다 대단해서, 다른 곡들에게 미안해 진다. 유희열이 작사, 성시경과 유희열이 공동 작곡했다. 유희열이 써서 그런지 '웃으며 안녕'이 자꾸 '뜨거운 안녕'으로 들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들리나보다.

5. 잃어버린 것들     작사: 이미나, 작곡: 성시경, 편곡: 이준엽
 지나간 그 시절의,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노래다.

6. 그대와 춤을     작사, 작곡, 편곡: 정지찬
 블루스 타임~ ...재즈곡이다. 정말로 그대와 단둘이 블루스를 추고 싶어지는 곡이다.

7. Baby You Are Beautiful     작사: 성시경, 작곡 편곡: 이준엽
화려한 영어 발음을 자랑하는 노래다. 엄친아 답다. 뷰티풀하고 원더풀 한 '유'에 관한 곡이다. 사랑하는 그 감정을 그대로 가사에 담은 것 같다. 이런 가사를 쓴 것으로 보아, 성시경은... 애정결핍인 것 같다.

8. 눈부신 고백     작사 작곡 편곡: 이승환
 이승환이 만들었다. 모 방송에서 이승환이 성시경이랑 친해지고싶은데 별로 안 친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게스트로 만났을 땐 그런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곡을 많이 안 주는 가수라고 들었는데, 양파나 김동률 앨범 등에서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눈부신 고백'이라는 제목이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생각나게 한다. 가사중에 '화려한 고백'이란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9. 사랑하는 일     작사: 심재희, 작곡: 성시경, 편곡: 이준엽
 어쩌면 멜로디가 6집 중에서 지금까지 해 오던 대중적인 발라드에 가장 가까운 노래운 곡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많이 다르긴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아 너를 얼마나 사랑했었던 나였는지 긴 시간 지나도 어떤 바람보다 간절한 하나 너의 곁에 나로 돌아 가는 일'이란 후렴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나타내 준다. '눈부신 우리 사랑했었던 모습으로 먼 언제도 좋은 살며 변하지 않을 간절한 한가지 다시 만나 전처럼 사랑하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10. 소풍     작사 작곡 편곡: 정재형
 피아노 반주부터 모든 걸 정재형씨가 작업했다. 정재형만의.... 분위기와 조용조용한 피아노반주가 참 인상적이다.

11. 당신은 참..     작사 작곡 편곡: 노영심
 노영심씨가 만들었다. '당신은 참, 내게는 참, 그런사람'하면서 조용조용하게 옆 사람 한테 이야기한다. 조용하게 착 가라앉혀진 분위기로 앨범을 마무리지어서, 다 듣고나서의 가라앉혀진 기분이 참 맘에 든다. 이런 감성으로 글을쓰거나 시를쓰면 참 잘 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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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을 기다리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더 성장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다시 찾아올 그 날을 기대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 마지막 발라드 싱어. 발라드 계보의 마지막 페이지가 그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도, 그렇게 나쁜 결말은 아닌 것 닽다. 해피엔딩을 기대한다.